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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의 감사 기도!!!/ '크리스챤 유승민 16년만에 중국 격파 /설교자가 오해하는 마태복음 15장
2003-11-28 23:23:54 read : 65536
장미란이 21일 밤(한국시간) 아테네 니키아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역도 75kg이상급에서 은메달을 따낸뒤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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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크리스챤 유승민 16년만에 중국 격파
유승민, 16년만에 중국 격파 '金'
한국 탁구의 위력을 보여준 날이었다.
남자 단식에 나선 유승민(삼성생명)은 준결승서 백전노장 얀 오베 발트너(스웨덴)를 꺾고 은메달을 확보했고, 김경아(대한항공)는 여자 단식 3,4위전에서 승리해 동메달을 땄다. 복싱 69kg급의 김정주(원주시청)는 23일 새벽 노보아(콜롬비아)와의 8강전서 25-23으로 승리해 4강에 오르며 귀중한 동메달을 확보했다.
'탁구 신동' 유승민은 22일 오후 아테네 갈라치올림픽홀에서 벌어진 준결승전에서 발트너를 4대1(11-9, 9-11, 11-9, 11-5, 11-5)로 꺾고 결승에 진출, 23일 오후 8시 세계 최강 왕리친을 꺾은 왕하오(이상 중국)와 금메달을 다투게 됐다. 이로써 유승민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남자 단식서 금메달을 딴 유남규 이후 16년만에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1세트를 11-9로 따낸 유승민은 2세트(9-11)를 내주며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유승민은 3세트 10-9 상황에서 침착하게 발트너의 실수를 유발해 세트를 거머줬고, 이후 4,5세트에서는 주특기인 파워 드라이브로 승부, 결승행을 확정지었다.
장이닝(중국)에 져 결승행이 좌절됐던 김경아는 싱가포르의 리 지아웨이를 상대로 4대1(9-11 11-8 11-7 11-5 11-8)의 역전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수비 전문인 김경아는 1세트를 9-11로 빼앗겼지만 2세트를 11-8로 승리,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이후 3,4,5세트도 침착하게 경기를 이끌어 귀중한 메달을 보탰다. 이로써 한국은 금 5개, 은 10개, 동 5개로 종합순위 10위를 달렸다. < 23일 오전 3시> 북한의 김향미는 여자 단식 결승에서 장이닝에 0대4로 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8강 진출을 확정지은 남자 핸드볼은 슬로베니아에 23대26으로 덜미를 잡혔으나 2승3패를 기록, 조 3위로 8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그러나 여자 하키는 독일에 2대3으로 져 조 4위(1승1무2패)로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편, 23일 새벽 마라톤 원조코스에서 열린 여자 마라톤에서는 노구치 미주키(일본)가 25km지점부터 독주해 2시간26분20초로 골인, 2위 케냐의 캐서린 은데레바(2시간26분32초)를 제치고 우승했다. 기대를 모았던 세계기록 보유자 래드클리프(영국)와 북한의 함봉실은 레이스 도중 기권했다.
전날 한국은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 박경모(인천계양구청) 장용호(예천군청) 임동현(충북체고)이 나서 대만을 251대244로 제치고 금메달을 추가했다. 또 역도 여자 75㎏이상급의 장미란(원주시청)과 배드민턴 남자 단식의 손승모(밀양시청)도 은메달을 추가했다. < 특별취재단> "탁구가 더이상 비인기 종목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만에 탁구 강국의 면모를 세계에 알린 남자단식 금메달리스트 유승민(22ㆍ삼성생명)은 자신의 영광보다 탁구에 대한 관심을 우선 부탁했다.
유승민은 금메달을 확정한 뒤 결연한 표정으로 의젓하게 인터뷰에 응했지만 "지금 부모님이 가장 보고 싶다"며 소년같은 순진함을 보이기도 했다.
-어려운 상대를 넘고 금메달을 땄는데.
▶상대 선수가 이면타법에 최강이고 중국 탁구의 차세대 에이스여서 적잖이 긴장했었다. 그러나 첫 세트를 손쉽게 이기고 난 뒤 자신감이 붙었다.
-상대 왕하오와는 어떤 악연이 있나.
▶99년 아시아주니어선수권때 한 번 이겨봤고 성인대회에선 올해 코리아오픈 4강전을 포함해 5번 모두 졌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뛰었나.
▶개인의 명예보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흘린 땀방울의 보답을 받고 싶었다.
-이번 금메달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한국이 그동안 올림픽에서 결승 문턱에는 자주 갔었지만 16년 만에 비로소 결실을 거뒀다. 한국 탁구가 부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승부처는.
▶세트 스코어 3-1로 앞서던 4세트에서 8-4로 앞서다가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순간 당황했지만 페이스를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을 비웠다. 또 6세트 9-9 동점에서 리시브를 강하게 받아넘기고 (10-9)리드를 잡으면서 자신감을 얻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성원해준 국민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성원해 주셔서 감사한다. 그런데 어린 선수들이 탁구를 기피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이번을 계기로 탁구를 더욱 더 사랑해 주시길 바란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집에서 기뻐서 울고 계실 부모님이 보고 싶고, 나를 이끌어 주신 감독 코치 선생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삼성생명 임직원들께도 감사드린다. < 특별취재단> < 유승민 누구인가> 유승민은 '탁구신동'으로 통한다.
지난 97년 15세(부천 내동중 3년) 때 국가대표로 뽑혔다. 역대 최연소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고, 선배들은 그 앞에 서면 추풍낙엽이었다. 이 때문에 '괴물'이란 별명도 얻었다.
세계 탁구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99년 아시아주니어대회. 단, 복식을 휩쓸었다. 당시 중국 선수들은 유승민의 괴력에 몸서리쳤다고 한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18세(경기 동남종고 3년) 때 출전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경기장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단식 1회전에서 탈락했다. 또 '10년 연상'인 이철승과 짝을 이룬 복식에서도 4위에 그쳤다.
절치부심하던 유승민이 화려하게 재기한 무대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복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선 세계 랭킹 3위로 3번 시드를 받았다.
오른손 펜홀더 드라이브형으로 강력한 드라이브 샷이 주무기. 또 승부 근성이 강하고 늘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 특별취재단> ◇유승민 프로필 ▶생년월일:1982년 8월5일 ▶출신교:경기 오정초-경기 내동중-경기 동남종고-경기대 ▶소속=삼성생명 ▶전형=오른쪽 펜홀더 드라이브 ▶가족관계:유우향-황감순씨의 무녀독남 ▶신장/체중:1m78-70kg ▶혈액형:O형 ▶종교:기독교 ▶주요성적:2004 폭스바겐코리아오픈대회단식 3위 / 2004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 3위 / 2003 ITTF프로투어 그랜드 파이널 단식 3위 / 2002 부산아시안게임 복식 금메달 / 2002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단식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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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오해하는 마태복음 15장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 대한 예수의 표현은 모욕적이다(?)
성기문 ksung65@chol.com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노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5:21-28).
사람들은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신약원문이 말하거나 사용하고 있는 단어나 표현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24절), "자녀의 음식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오"(26절)와 같은 예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행한 '모욕적인 표현'에 대해서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에 주로 의존해서 행하는 해석이나 설교는 건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제 본문을 꼼꼼히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본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향해 가실 때, 한 가나안 여자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말했다. 주 다윗의 자손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제 딸이 귀신이 들려 무척 고생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부터 게네사렛 땅으로 와서 자기를 비난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의 논쟁 후에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은 그 지역에서 나와 예수를 맞았다. 두로와 시돈, 그리고 가나안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들보다도 더 멸시를 받고 하나님의 구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들로 여겨지지 않았던가! 이들은 "땅 끝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 '구원'의 대상자인 유대 땅과 유대인들을 피해 저주받고 버림받은 두로와 시돈의 땅으로 향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또한 가나안 여인이 그곳을 떠나 나오다가 예수를 만났다는 말은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배경설명은 나중에 나오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는 예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방인인 그녀는 예수의 배타주의적 선교(혹은 구원)관의 대전제원칙의 예외로 고침을 받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우리가 자주 말하듯이 강청기도(强請祈禱)의 덕분인가? 아니면 본문의 의도가 예수의 배타적인, 즉 지리적 혈연적 구원관('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내가 볼 때 문맥상 "구원받을 자가 유대나라와 유대 땅에 국한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사역이 그곳에만 국한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어째서 유대 땅을 떠나 두로와 시돈으로 가다가 그곳에서 오는 가나안 여인을 만나서 기적을 행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본문을 더 읽어보아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그 여자가 우리 뒤를 따라오며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녀를 우리로부터 보내소서."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여인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으시던 예수께서 제자들의 물음에 대답하셨다는 점이다. 우리가 종종 오해하듯이 여자에게 대답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와 그의 일행들을 "괴롭게 하는" 가나안 여자를 그들에게서 떼어내 달라고 예수께 요청하는 제자들에게 대답하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예수께서 처음에는 여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가 제자들의 간청에 못 이겨 나중에 그 여인에게 대답했던 것으로 생각하나 그런 것은 아니다.
사도들의 입장은 당시의 유대사람들의 입장과 유사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귀찮게 하는 존재를 자신들의 눈앞에서 몰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끈덕졌는지 제자들이 두 손 두 발을 들고 이 귀찮은 일을 자신들의 선생에게 맡길 정도였을까?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를 우리로부터 보내소서"(send her away from us)(제자들)는 표현과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예수)라는 표현이 상응한다는 점이다.
그녀가 예수와 제자들을 계속해서 시끄럽게 하니 제자들은 예수에게 그녀를 떠나보내라고 요청하고 예수는 그러한 요청을 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일은 "그녀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갖는 다소 모호한 표현을 쓴다. 이러한 소란행위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셨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무엄하게도 제자들은 가나안 여자를 떼어내는 일을 자신들의 선생에게 시킨다. 그랬더니 선생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어린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라는 자신의 임무를 언급할 뿐 다른 행동을 일절 취하지 않는다.
제자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아니, 이 시끄러운 여자 좀 떼어내시라고(다른데로 좀 보내라고) 했더니, 뜬금없이 자기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어린양에게만 보냄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어째서 하실까? 그 여자를 꾸짖어 쫓아내시고 싶지 않으신가? 어어, 결국 그 여자가 예수님 앞에까지 와버렸네!" 멀리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예수의 일행들을 쫓아오던 가나안 여자는 드디어 예수 앞에 도달하여 경배와 복종의 표시로 그에게 넙죽 엎드린다. "주님, 나 좀 도와주소!"
제자들과 한차례 행했던 것과 같은 예수의 선문답은 여자에게도 행해진다. "자식들의 음식을 자식에게 주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에게 줄 수는 없지!"
그러자 그녀도 지지 않고 예수께 한마디 한다. "주님, 옳습니다. 자식들의 음식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에게 줄 수는 없지요. 하지만 자식들이 먹다가 흘린 것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에게 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자신과 제자들과 사이에서 예수께서는 "목자와 양"으로 자신의 지상에서 임무를 표명하셨다. 그리고는 자신과 여자 사이에서 예수께서는 집주인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로 그녀와의 관계를 설정하셨다. 이것도 '장군 멍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기에서 언급되는 '개들'은 퀴나리오이스(집에서 키우는 개들, 혹은 강아지들)라는 헬라어다. 만약 우리가 그것들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근동지방에서 떠돌아다니며 사람을 공격하고 지저분한 것들을 먹어치우는 들개들(wild dogs)을 생각했다면 그것은 이 이야기를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모두들 알다시피 들개는 그쪽 지역에서 지저분한 짐승들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비록 돼지만큼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곳에서 들개를 만나면 돌팔매질하는 것이 적합하지 아무리 상에서 떨어진 음식이라도 그것들에게 던져 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유대지방 사람들과 들개와의 관계다!
그러나 집에서 키우는 개는 그렇지 않다. 지금의 우리처럼 사람의 상전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주인과 비록 대등한 관계는 아닐지라도(목자와 양도 마찬가지다) 개도 한 울타리 안에 사는 한 식솔이 아니란 말인가! 아마도 가나안 여인은 소와 양이 귀중하다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베풀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항변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양들은 비록 밖에 있더라도 주인의 소유며 한 식구며 귀중한 재산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미 가나안 여인은 집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러한 융화의 과정은 우선 예수께서 금지된 지역으로 향하셨기 때문이며 그녀가 그곳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녀가 예수를 만나려고 했으며 예수께서 이미 그녀를 한식구로 맞아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예수의 말씀 중에서 이스라엘 사람은 주인의 자녀로, 이방인들은 주인의 개로 즉 '인간 이하'로 보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구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것뿐이다. 그녀는 예수의 주변에서 목청껏 예수의 관심과 사랑을 요청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예수 앞에서 그와 직면하고 있었으며 그에게 은총을 구하고 있었다. 이제 엄연히 그녀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그리고 다시 찾은 '어린 양'이 되어있었다. '주님의 애완견'은 이상하고 '주님의 어린 양'은 좋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여자야, 네 믿음이 놀랍도다, 네 소원이 이루어졌도다!"
"여자야!"라는 말은 헬라어로 "귀나이(gynai)"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사용한 말로 절대 평대 혹은 하대어가 아니다. 학자들은 이 말(호격)은 여인 혹은 결혼한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애정과 존중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표현은 사람들이 가정하듯이 하대하거나 천박한 종류로 이해했던 여성에게 할 수 있는 표현은 아닌 것이다.
큰 믿음이라고 이해되는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수량적인 것이 아니다. 이 믿음은 놀라운 믿음이며 상식 밖의 믿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큰 믿음이란 행위를 포함하는 것이며 신뢰와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믿는다고 주문처럼 되뇌는 것이나 허황하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크고 놀라운 것을 무조건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앞뒤로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불신앙과 예수를 시험하려는 태도들과 대조가 된다. 물론 다른 부분에서는 기적과 치유와 육체적 필요의 만족에만 탐닉하는 백성들의 요구를 비난하시거나 회피하시는 예수의 모습도 나타난다. 그와 같이 우리가 기적과 치유기사를 접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종교적이지 않고 경건해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큰 믿음과 신뢰와 순종은 여전히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산 증거요 산 교훈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증거들을 통해서 볼 때, 예수께서 비정하고 냉정하게 가나안 여인을 박대하였거나 홀대했다고 볼 만한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지역과 혈연을 넘는 구원의 세계를 열고 계셨고 이방인들에게도 관심과 포용력을 갖고 계셨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항상 천대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셨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포용하신 점은 현 시대 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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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가 부담스러워질 때
이상규 | 고신대 교수
목회(牧會)란 “교역자가 복음의 진리를 신자의 생활에 적용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평양신학교 교수로서 31년 동안(1908~1939) 실천신학을 가르쳐 온 「목회학」의 저자 곽안련(Charles Allen clark, 1878~1961) 선교사의 정의이다. 그는 목회란 “하나님의 자녀들인 신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양육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강조하였다. 이렇게 볼 때 목회는 스펄전의 말처럼 ‘거룩한 소명’이자 ‘영적 소명’(Geistliche Berufung)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 목회자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목회가 항상 은혜 넘치는 소명 가운데서 칭찬(cum laude)과 특권을 얻는(cum privilegio) 사역일 수만은 없다. 때로는 고뇌와 아픔이 있고, 때로는 좌절과 절망, 무기력, 탈진에 이르기까지 한다. 특히 인간관계의 단절로 오는 심각한 대립가 교회를 전투장으로 변하게 만들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투쟁을 겪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자는 지속되는 피곤, 우둔해지는 판단력, 과민성 등으로 절망하며 고통의 날을 보내기도 한다.
목회는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련의 활동이지만, 목회사역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고 교회라는 조직체 안에서 수행되기 때문에 인간관계와 조직의 특성으로부터 자유 로울 수 없다. 교회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이지만 사람들로 구성되는 공동체’(Divine institution, human constitution)이기 때문에 목회자는 동시에 두 세계, 곧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목회는 거룩한 소명이지만 동시에 목회자는 항상 ‘거룩한 부름’에 안주할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고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여기에 목회자들의 고뇌와 고민이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겨운 고투를 겪게 되는 이유이다.
1976년 탈진에 대한 첫 연구서를 출간했던 크리스티나 마슬라(Christina Maslach)는 탈진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는데, 목회야말로 탈진에 이르는 첩경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목회가 거룩한 소명이기보다는 부담스러운 여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피할 수 없는 부담감을 가지고(cum onere)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대학 강단에서 교회사를 가르쳐온 필자로서는 목회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유학생활을 포함하여 4년간 해외에서 목회한 일이 있고, 국내에서 안식년을 떠난 목회자를 대신하여 1년간 목회자로 설교와 교육, 심방, 성례 집례 등 목회 전반에서 경험을 쌓았으니 그것도 다 합하면 거뜬히 5년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보고 들은 일들도 적지 않으니 목회에 대해 말할 약간의 자격은 갖춘 셈이다. 아마도 이런 점을 고려하고 편집자가 청탁한 듯한 “목회가 부담스러울 때”라는 글은, 그럼에도 내게 부담으로 돌아왔다.
영적 긴장감
짧은 경험이지만 목회자로서 가장 큰 짐은 목회자는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 있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맑은 영혼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긴장감이었다. 늘 자기와의 고투를 통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목회자다운 규모 있는 삶과, 확신을 가지고 정직하게 설교할 수 있는 내적 신실함은 목회자의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필요하다. 목회자의 권위는 목사라는 신분이 자연히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삶을 통해 드러내야 한다는 내적 요구가 우리를 늘 자성하고 긴장하게 한다.
교회의 쇠락은 따지고 보면 성직자의 타락에서 기인하기에 우선 영적 지도자로서 영성을 잃지 않는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요구는 목회자의 거룩한 부담이기도 하다. 중세 말기의 타락한 교회 현실에서 나온 경구인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Vita clerici est evangelium laice)라는 말은 언제나 목회자의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상규
고신대와 동대학원, 호주신학대학(Ph.D.)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서 교회사와 역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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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가 성경 본문에서 멀어질 때 (The Decline of the Text)
데이비드 라슨/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은퇴교수
이글은 Preaching March/April 2003(pp.26~28)에 실린 글로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 Copyrightⓒ2003 by Preaching. Used by Permission.
교회에서 목회자의 리더십이란, 주로 설교와 가르치는 사역에서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지역 교회의 많은 우선순위들 가운데 그 정점은, 당연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그것은 성경 말씀의 선포와 떨어질 수 없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신약과 구약 모두에서 -그것이 선지자를 통해서든 혹은 사도를 통해서든- 성경은 드러난 진리를 명확하게 밝히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지상 최고의 설교자이자 선생이셨다.
2000년의 교회 역사를 통해, 설교가 강했던 곳에서는 그 교회 역시 강력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설교가 약했던 곳에서는, 그 교회 역시 약하고 무력했었다. 기도와 성령의 역사하심과 같은 다른 요소들 역시 분명히 관련이 있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본질적으로 ‘성령의 사역’과 잇닿아 결합되어 있다.
교회에 있어 설교가 가지는 중요도와 탁월성은, 복음 전도와 크리스천 양육, 그리고 성도들의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들에 있어서 성경이 어떠한 역할을 하도록 의도되어졌는가와 관련하여 설명될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암 8:11)은 비참한 재난이다.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사 1:3, 호 4:6) 통탄할 죄다. 이때 개인 차원과 공적 측면은 불가분하게 연결된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중요한 관점이야말로, 설교에 대한 관점의 중요한 근원이 된다.
진정한 권위를 가지는 설교의 본질은, 성경 본문에 대한 매우 주의 깊은 해석과 그 본문이 오늘날 삶의 상황으로 연결되는 적용이다. 설교자는 해석학적인 의식을 통하여, 그 본문이 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그 당시에서 현재로”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본문 안에 갇혀버리는 것은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성경 본문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적용의 모든 측면들은, 본문의 의미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우리는 말씀이 말하는 것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성경 말씀에 대한 이러한 경건하고 겸손한 태도야말로, 성경적인 설교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성경 본문이 바로 열쇠인 것이다.
설교의 역사는, 설교에 있어 말씀이 약화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 본문의 의미를 선포하기 위해 헌신된 설교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영적 내리막길에 대한 전조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설교들이 말씀에 충실한 태도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이때에, 우리 시대를 향한 경종이 분명히 울려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거대한 움직임이란, 본문 중심적인 설교로부터 필요 중심적이고, 청중 중심적이며, 문제-해결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설교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현상은, 본문 말씀이 적용에 예속(종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목회자는 자신이 맡고 있는 교인들의 고민과 고통을 느낀다. 본문이 읽혀지긴 하지만, 일종의 주제문이나 모토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본문 말씀과 씨름하는 분투의 노력이 사라지고 있다. 본문 안에서 생각을 발전시키고 그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요점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 목회자의 표현대로 “본론으로 직접 들어간다”는 것이다. “실제적인 적용점과 심리학적인 유추, 실례가 되는 예화나 이야기들로 들어가라. 이것은 진흙 속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결론을 나눠라. 그 결론이 어떻게 도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데이비드 라슨(David L. Larsen) 미국 일리오니 디어필드의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은퇴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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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공금횡령으로 3백만원 벌금 선고
서울 용산구 청암동에 위치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청암샘물교회 김인규목사가 교회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대법원 형사과 제3부로부터 지난달 25일 벌금 300만원을 확정 판결 받은 사건이 발생,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 등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타인의 금원을 피고인의 마음대로 제3자에게 사채로서 대여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며, 법인의 구성원이 업무수행에 있어 관계 법령을 위반함으로써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다면 그의 개인적인 변호사 비용을 법인자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횡령에 해당하고, 그 변호사 비용을 법인이 부담하는 것이 관례라고 하여도 그러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할 만큼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보편화된 관례라고 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히고 있다.
지난 1989년 청암샘물교회에 부임한 김목사는 목사퇴직금을 교회내부규정에 의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520만원을 인출하여 개인용도로 횡령하는 한편 교회운영비 5백만원을 미국 여행비 등의 명목으로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또한 김목사는 동교회가 위치한 지역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교회재건축비용으로 교인들이 모은 약 1억원 상당의 예치금액 중 8천만원을 인출, 임의로 임모씨에게 사업자금으로 빌려주어 이를 횡령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1998년 동교회 모장로 등으로부터 영등포경찰서에 업무상횡령등의 혐의로 고소당하자, 교회 직원회 결의만 거친 채 5백만원을 인출하여 변호인 선임료로 지급, 횡령한 것으로 판결문은 밝히고 있다.
대법원은 김목사의 상고를 기각하고1심과 고등법원에서 판결한 내용을 확정 판결했다.
현재 김목사와 김목사를 따르는 몇몇 교인들은 김목사의 명의로 되어 있는 동교회를 사수하고 있으며 김목사의 행태를 보며 반발한 다수의 교인들은 산천동 상가에 따로 건물을 얻어 예배드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998년 1월 김목사의 횡령사건이 벌어지면서 김목사가 소속되어 있는 서울남지방회는 목사직 1년 정직을 판결했으나,상위 기관인 지역총회는 법원의 판결을 보고 판결을 내린다는 원칙을 정하고 보류한 상태여서 교단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 김목사는 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올바른 목회자의 길을 갈 것을 종용했던 7인의 교인들을 업무방해, 예배방해, 명예훼손, 모독죄 등으로 먼저 형사고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은 무혐의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들은 대응차원에서 김목사를 고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독교신문/박병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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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 '포스트 성장시대' 방향성 제시
2004 한미준 신학생 세미나서 옥한흠 목사 강연
“지금은 30~40년 전 목회하던 때와 비교할 때 매우 어려운 시대다. 과거는 그래도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순수한 사람들을 두고 목회를 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진 시대 속에서 또한 수적으로 엄청나게 불어났지만 근래 20여 년동안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는 한국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란 너무도 힘이 든다”
한국교회미래를준비하는모임(이하 한미준)이 주최하고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더 프론티어 스피릿(The Frontier Spirit)' 이라는 주제로 지난 19일부터 오늘까지 2박3일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제 5회 한미준 신학생 세미나’에서 두 번째 강연을 맡은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의 말이다.
신학생 및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 600여 명을 대상으로 열리는 이번 세미나에서 옥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포스트 성장시대’에 들어와 있다며 한국교회가 현재 엄청난 성장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성장의 후유증을 ‘교회를 키우려고 사람만 많이 모으려다 보니 목회자들의 목회 성향이 예배일변도로 흐르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목회자가 교회 사이즈로 평가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시장원리가 목회현장에까지 들어와 무조건 교인수를 늘리고 헌금을 많이 거두는데 급급하게 되고 목회자는 자기도 모르게 ‘물량주의’에 빠져 ‘주일예배에 몇 명 모였나’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옥 목사는 “물론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만 예배만 잘 드렸다고 교인수만 많다고 목회를 잘한다고 볼 수만은 없다. 교인들도 예배만 잘 드린다고 그 사람의 신앙이 좋다고 무조건 평가할 수 있는가? 예배때는 은혜롭게 보여도 세상에 나가서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산다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설교도 위기다. 교인들이 듣기좋은 말만하고 궁극적으로 복음이 빠져있다. 교인들도 앵무새처럼 ‘아멘’만 하지 무슨 힘이 있고, 사회에서 과연 무슨 일을 하나? 예배 때나 기도회 때는 손을 들고 은혜로운 척 하지만 그것이 그때 그 순간으로만 그치니 걱정스러울 뿐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옥 목사는 이와 더불어 “성경적 가르침은 인격과 삶의 변화에 목적이 있다”며 “말씀이 그 사람의 인격과 삶에 녹아들어가도록 교인들을 가르치는 목회를 해야 한다. 이와같은 변화에 중점을 두지 않는 지식위주의 가르침으로는 결국 실패하는 목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목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그를 변화시키고자 목숨을 거는 목회를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제자훈련에 미친 이유다. 그렇게만 된다면 목회자 자신 안에 있는 남들보다 높아지고 유명해려고 하는 야심과 거짓의 지꺼기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류정희 기자 jhryu@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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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 헌금 개척교회 살려요”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예성·총회장 위광필)가 ‘천사운동’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천사운동은 성도들이 1000원씩 헌금해 개척교회를 키우자는 운동이다.
23일 예성총회와 부흥사회에 따르면 예성 목회자들은 성도 이탈과 재정난에 허덕이는 교회들을 돕기 위해 천사운동을 본격 추진키로 최근 하계수련회에서 뜻을 모았다. 천사운동은 3년 전에 기획됐으나 그동안 개별 교회의 현안에 파묻혀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수년째 한국 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데다 대형교회만 성장,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천사운동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현재 예성의 재적성도는 30만여명,세례 성도는 16만여명이다. 1인당 1000원씩 헌금하면 한번에 1억6000만원∼3억원이 모이게 된다.
예성 부흥사회 상임총무 함성환(흰돌교회) 목사는 “비신자 전도에 큰 기여를 하는 개척교회들이 계속되는 성도들의 수평 이동에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스러져가는 개척교회들을 돕고 한국 교회의 질적 성장을 이끄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경선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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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서 세례요한의 동굴 발견
세례용 항아리 파편 25만여개, 조각물 등 발견돼
최근 영국과 미국의 고고학자팀이 세례요한이 세례를 행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동굴을 예루살렘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동굴은 세례요한의 출생지로 알려진 예루살렘 에인 케렘 마을에서 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 22m, 폭과 깊이가 각 4m이다. 또 세례용으로 추정되는 항아리 파편 25만여개와 천장에 새겨진 긴머리 남성의 조각, 동굴 밑으로 들어가는 계단 28개 등도 발견됐다.
이에 발굴단을 이끌었던 영국의 고고학자 시몬 깁슨은 "동굴에서 발견된 수많은 항아리 파편들과 세례요한을 설명하는 조각물 등에 근거해 이같은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이로서 세례요한이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학자들은 "동굴안 어디에도 요한의 이름이 새겨져있지 않으며 세례를 베풀었다는 정확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동은 기자 dekim@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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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 병원의 기원
한국에 온 최초의 선교사는 목사가 아니라 의사였다. 1884년 한국에 온 알렌은 갑신정변의 와중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민비의 조카 민영익을 살려주었고, 이것이 기회가 되어서 왕실이 후원하는 병원을 세우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에 이 병원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심해졌고, 결국 선교사들은 고용인에 불과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 병원을 주관하는 관리들의 부패가 심해서 부정이 횡행하여 원성이 컸다. 결국 선교사들은 만일 재산권과 운영권을 자신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오랜 협상 끝에 결국 선교사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이 당시 병원의 책임자는 에비슨(O. R. Avison)박사였다. 1893년 한국에 온 그는 병원의 발전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는 우선 병원의 수준을 높이려고 했다. 원래 에비슨이 처음 도착했을 때 그 병원은 한국식 단층건물로 약 12.5평정도의 건물이었다. 따라서 병원이라기 보다는 진로소에 불과했다.
에비슨박사는 카나다에 있는 자신의 친구 고든(H. B. Gordon)에게 부탁하여 4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병원을 설계토록했다. 약 비용은 1만불 정도 소용될 예정이었다. 선교본부는 무리한 계획이라고 보았다.
1900년 봄에 에비슨은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열린 초교파 해외선교대회에 참석해서 연설 하게 되었다. 참석하고 보니 청중이 너무 많아서 겁을 먹었다. 그래서 두 번째 발코니 맨 뒤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만일 그사람이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바로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지배인으로 있는 세브란스(Louis Sevrance)였다.
에비슨은 한국의 서울에서 7명의 의사가 힘을 합쳐서 하나의 현대식 병원을 운영한다면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세브란스는 에비슨을 찾아와서 그의 계획을 자세히 물었다. 에비슨은 이미 설계도까지 작성했다고 말했다. 여기세 세브란스는 다시 한 번 감명을 받았다. 얼마후에 세브란스는 자신이 한국의 병원을 위해서 1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선교부에서는 논란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병원짓는데 너무 큰 돈을 허비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일부에서는 작은 병원을 여러게 짓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에비슨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 결국 선교부는 에비슨의 구상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1902년에 세브란스의 기부금과 기존의 병원을 판 대금을 합하여 서울역 맞은 편에 병원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하여 고든이 직접와서 감독하였다. 결국 1904년 11월 이 병원은 세브란스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원하였다. 세브란스는 개원과 함께 한 사람의 의사를 파송했는데 그 이름은 허스트(J. W. Hirst)이며, 1934년 은퇴할 때까지 한국에서 일했다.
1907년 세브란스는 자신의 주치의인 루드로우(A. I. Ludlow)와 함께 한국에 와서 이 병원을 보고 너무 기뻐했다. 그리고 원래의 건물보다 더 크고,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건물을 짓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그는 한국의 다른 선교사업을 위해서도 많은 헌금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주치의인 루드로우를 한국에 보내 선교사로 일하게 했는데 루드로우는 세브란스에서 1938년까지 일했다.
세브란스병원은 한 의료선교사의 비젼과 그것을 위해서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준 한 사업가가 힘을 합쳐서 시작되었다.
박명수 교수(서울신학대학교 교수, 부설 성결교회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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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선교회, 내달 선교훈련학교 개강
중동선교회(MET, 대표 김요셉)가 내달 6일부터 3달여간 머릿돌교회(조정해 목사)에서 '2004년 후반기 선교 훈련학교'를 개강한다.
중동을 비롯한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지의 이슬람권 영혼들을 섬기기 위한 이번 선교훈련학교는 이슬람의 이해, 중동역사, 무슬림 전도법 등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 진다.
특히 성경과 꾸란, 기독교와 이슬람 비교 등은 이슬람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를 도울 것으로 보인다.
대상은 이슬람권 선교관심자이며 훈련비는 17만원이다.
문의) 02-3436-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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